소비가 보여주는 계급격차, 21세기 미묘한 ‘구별짓기’

큰사진보기 ▲ 책 표지은 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Elezabeth Currid-Halkett)이 2017년에 쓴 을 번역한 책이다. 영어 제목은 정도 뜻이다. 우리말 번역본이 올해 출판사 ‘오월의봄’에서 나왔다. 옮긴 이는 유강은이다. ⓒ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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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를 보여주는 소비

“소비는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소비 습관은 우리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를 드러낸다. 우리가 무엇을 소비하는지를 둘러싼 우리의 선택은 사회의 다른 집단과 우리를 연결해주는 동시에 분리시킨다.” (책, 340쪽)

현대사회에서 ‘소비’는 필요한 것을 사는 행동 그 이상을 담고 있다. 무슨 물건을 사고, 어디에 살며, 어떤 서비스를 받는지는 그 사람의 지위와 계급을 드러낸다. 소비를 통해 자신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때도 있고,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그러기도 한다.

지위를 보여주는 소비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한 사람은 <야망계급론>에도 자주 등장하는 베블런(Thorstein Veblen)이다. 베블런은 한가한 상류층(leisure class)의 과시적 소비에 대해 비판했다. 거칠게 말하면, 흘러넘치는 돈과 시간을 어쩌지 못하는 사람들은 별 쓸모도 없는 물건을 비싸게 사면서 ‘아름다움’으로 포장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과시 소비’다.

“아름다움에 높은 가치가 부여된 물품의 효용은 그것이 얼마나 비싸냐에 크게 좌우된다. … 10~20달러의 상업적 가치가 있는 수제 은수저가 기계로 만든 같은 재질의 수저보다 본래적 의미에서의 유용성이 더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베블런, 1899, 박종현 옮김, 2023, <유한계급론>, 154쪽, 휴머니스트)

<야망계급론>은 소비가 지위를 보여준다는 베블런의 생각에서 출발한다. 책은 오늘날 미국의 소비 모습과 지난 수십 년 사이의 소비 변화를 보여준다(책, 21쪽). 그 중심에는 글쓴이가 ‘야망계급(aspirational class)’으로 부르는 미국의 새로운 엘리트 지배 집단이 자리한다.

커리드헬킷은 야망계급을 높은 교육수준과 지식 같은 문화 자본을 바탕으로 한 가치 소비를 실천하는 집단으로 규정한다(책, 47쪽). 베블런이 말한 ‘유한계급’과 달리, 야망계급은 단순히 돈만 많은 사람, 비싼 물건만 사는 이들이 아니다. 친환경이나 건강, 안전, 동물권 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즉, 가치에 바탕을 두고 소비한다.

문화 자본에 기초한 이러한 소비는 언뜻 매우 긍정적으로 보인다. 농민과 직거래한 유기농 채소, 넓은 뜰에서 방목한 동물이 만든 유제품을 소비하는 일은 환경과 동물, 아이들을 위한 따뜻한 마음이 들어 있다.

소비 패턴은 변했지만… 교묘하게 격차 확대하는 지배 엘리트

“지배적 문화 엘리트들은 단순한 과시적 소비 대신 과시적 생산, 과시적 여가, 비과시적 소비에 참여하는 쪽을 선호하는데, 이 모든 형태는 물질적 재화의 소비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계급 격차를 확대한다.” (책, 317~318쪽)

글쓴이는 야망계급 소비에서 드러나는 긍정성이 더욱 나쁜 결과를 만든다고 주장한다. 언뜻 ‘유한계급’과 달리 ‘야망계급’을 비난하기는 쉽지 않다. 21세기 엘리트들은 부지런하며 똑똑하다. 흥청망청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는다. 돈과 지위를 이용해 악행을 일삼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재벌 2, 3세들과 다른 행태를 보인다.

이 새로운 ‘지배 문화 엘리트들’은 자신들을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의 도덕성을 평가한다. 기후위기를 신경 쓰고 자녀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기꺼이 바쁜 시간을 쪼갠다. 잡지를 읽고 사회 문제를 토론하며, 갓난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는 그들이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책 <야망계급론>의 새로운 엘리트 지배층에 대한 비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답은 그들의 소비 패턴에서 찾을 수 있다.

야망계급은 자녀 교육, 은퇴 준비, 의료 등에 매우 많은 돈을 지출한다. 절대적 액수도 다른 계급보다 많지만, 소득에서 차지하는 지출 비율도 매우 높다. 이는 모두 현재와 미래를 함께 대비하는 소비이다. 자신과 자녀 세대의 안정적 삶을 보장하는 데 쓰이는 돈이다.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가 과거 시대의 생득권 엘리트들보다 더 자격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악기와 외국어를 배우고, 입시 준비를 하느라 온 삶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자신이) 그런 위치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 프린스턴 학생들은 물론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다만, 많은 이가 애초부터 그런 명문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만한 경제적·문화적 자원을 가진 엘리트집단에 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 134~135쪽)

2024년 프린스턴대학교(Princeton University) 학부 공식 등록금은 8만 6700달러에 달한다(프린스턴대학교 홈페이지, 2024년 4월 24일 검색). 수업료만 6만 2400달러다. 프린스턴대학 학비는 다른 아이비리그 사립 대학들보다 낮은 수준이다.

계층 세습을 잇는 다리, 교육

자녀 교육에 관심을 쏟으려면 시간과 함께 돈이 있어야 한다. 미국만큼은 아니어도 서울 유명 사립대학에 다니려면 보호자의 높은 소득과 문화 자본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은퇴 이후 생활 준비, 질 높은 의료 서비스도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 당장 먹고 살기도 벅찬 다수는 자녀 교육과 연금 저축에 돈을 쓸 여력이 없다.

생계를 위해 하루 내내 일하는 여성의 생활을 생각해보자. 그녀는 긴 노동 시간에 잠 잘 시간도 부족하다. 독서 모임은커녕 책과 잡지를 읽을 틈도 생기지 않는다.

모유 수유를 할 힘도 시간도 남지 않았다. 기후위기를 신경 쓸 겨를은 더욱 없다. 헬스클럽에서 일대일 지도를 받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 한다. 그에게 자녀의 교육에 돈을 들이고, 건강 식단을 꾸리는 일은 선택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다.

“자녀의 중등교육에 투자하고, 장바구니를 과일과 채소로 채우고, 정기 건강검진을 받고, 심지어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것까지도 모두 다음 세대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한다. … 야망계급은 0.01퍼센트가 아닐지 몰라도 이들은 다른 모든 이들과 동떨어진, 완전히 다른 특권적 문화 세계에 산다.” (책, 321쪽)

한국 사회에서도 ‘야망계급’이 존재한다. 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자신의 지위를 대물림하려는 엘리트 계급은 이미 익숙하다.

통계청과 교육부가 2024년 3월 14일 발표한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서 소득 200만 원 이하 계층의 사교육비는 13만 6000원이었다. 그런데 소득 800만 원 이상인 계층은 67만 1000원을 지출했다.
큰사진보기 ▲ 2023년 4분기 소득 수준별 교육비 지출통계청은 2024년 2월 29일 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는 ‘소득 5분위별 소비 지출과 구성 비율이 포함돼 있다. 위 그래프는 이것을 재구성한 것이다.소득 5분위는 소득을 5개 구간으로 나눈 것이다. 1분위는 소득 하위 20%, 5분위는 소득 상위 20%를 의미한다.교육비 지출 비중은 전체 지출 가운데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율(백분율)을 의미한다. ⓒ 김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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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은 2024년 2월 29일 <2023년 4/4분기 가계동향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는 ‘소득 5분위별 소비 지출과 구성 비율이 포함돼 있다. 위 그래프는 이것을 재구성한 것이다.

2023년 4/4분기에 소득 하위 20% 가구가 교육비에 지출한 금액은 1만 1000원이다. 같은 기간 소득 상위 20% 가구는 43만8000원을 교육비로 썼다. 차이만 거칠게 약 40배에 달한다.

소득이 많은 사람이 많은 돈을 쓰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전체 지출 비용에서 차지하는 교육비의 비중도 소득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소득 하위 20%는 2023년 4/4분기에 전체 지출의 0.8%만 교육비로 썼다. 반면 소득 상위 20%는 전체 지출의 8.9%를 교육비로 사용했다. 11.13배 차이가 난다. 이것은 미국 상위 1~5%가 총지출 가운데 평균 5%를 교육에 지출하는 것과 비교해도 매우 높은 비율이다(책, 125쪽).

‘야망계급’은 소득만이 아니라 특정한 지식과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과거 ‘과시 소비’를 일삼던 ‘유한계급’에 비해 진입장벽이 더 높다. 더구나 ‘능력주의’ 담론이 ‘공정’을 앞세워 불평등을 강화하듯이, 야망계급도 능력과 도덕성을 앞세워 자신들의 지위를 정당화한다.

그들은 은퇴 이후나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라는 ‘자본’을 가졌다. 넘기 어려운 높고도 높은 시간의 담장은 아무나 쌓을 수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어떤 특권을 누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